이용균기자
일본 프로야구를 거쳤지만 입단 테스트는 거부당했다. 1988시즌을 앞둔 겨울이었다. 한창 한국 프로야구에 재일동포 바람이 불 때였지만 OB 베어스의 벽은 높았다. 운영팀장은 그에게 테스트 탈락을 밝혔다. 그러나 그날도 그는 훈련에 빠지지 않았다.
송 코치는 “특별한 비결은 없다”고 했다. “전임 김광림 2군 감독이 잘 만들어둔 데다 유재웅, 이성열 등 힘있는 타자들이 라인업에 들어왔기 때문”이라고 말했다. 20년이 흘렀어도 발음에는 일본 냄새가 남아 있다. 하지만 두산 유니폼을 입은 지 22년째. 코치로 임용된 것만 따져도 92년부터니까 올시즌이 벌써 19번째 시즌이다. 프로야구 사상 한 팀에서 가장 오래 코치를 맡은 최장수 기록이다. 롯데 박영태 코치(93년~현재)를 1년 뛰어넘는다. 한 팀을 20년 넘게 지킨 힘은 전통을 무기로 갖는다. 송 코치는 “오래 한 팀에 있다보니 선수들의 성격을 잘 안다”고 했다. 일본 프로야구 시절 포수였던 그는 “양의지는 김태형 코치도 인정하겠지만 참 얌전하게 경기를 풀어나간다. 그 속에 노림수를 가졌다”고 했다. 양의지는 주전 포수 데뷔전(3월30일 넥센전)에서 홈런 2방을 때렸다.
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지만, 새 술을 담기 위해 부대를 벌릴 수 있는 것은 그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이의 역할이다. 부대가 제멋대로 벌어진다면 그 술이 제대로 담길 리 만무다. 송 코치는 “지금껏 한 팀에서 3명의 감독님(윤동균, 김인식, 김경문)을 모셨다. 선수들을 잘 알다보니, 감독이 원하는 팀 컬러에 맞도록 선수들을 이끌 수 있는 것 같다”고 조심스럽게 말했다. 송 코치는 “워낙 오래 있다보니 선수들이 날 코치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로 대하는 것 같다”고 덧붙였다. 그 아저씨는 김경문 감독(52)보다 두 살이 많은, 두산 코치 중 최고령이다.
그렇게 두산 타선은 변했다. 송 코치의 조언대로 타격폼을 조금 바꾼 고영민은 벌써 홈런 2개를 때렸다. 타격 때 앞선 왼발을 들어올리지 않고 제자리에 놔둔 덕분이다.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 타선이 홈런 수를 늘린다는 것은 어쩌면 ‘야구 이론’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. 하지만 두산은 20년을 바꾸지 않은 전통의 힘 속에 타선의 컬러를 확실히 바꿔가고 있다. 그리고 시즌 초반,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.
‘체인지 몬스터’는 변화에 저항하는 고집을 뜻하는 말. 하지만 변화를 거스르는 그 괴물을 잡는 것은 그 세월을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의 힘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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